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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간만에 읽은 책

<아르테미스> 셋팅을 배반하는 스토리

손군 songoon 2018. 10. 4. 23:17


SF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셋팅'에 있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시대나 세상, 배경을 설명하는 초반부가 그럴듯하고 재미있으면 절반은 성공한다. 아직 먼 상상일지라도, 과학적인 언어로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설명될수록 좋다.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스토리' 몫이다. 과학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서야 셋팅만 설명하다가 끝날 수는 없으므로, 이후 벌어지는 사건과 전개가 어느정도는 받쳐줘야한다. 


성공적인 SF는 흥미로운 셋팅과 좋은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있을 때 가능하다. 사건은 가급적 제시된 셋팅으로부터 자연발생하는 것이면 좋고, 그 세계 안에서 완결성을 가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앤디 위어의 <마션>은 성공적인 SF다. 화성 탐사와 낙오, 생존, 귀환으로 이어지는 셋팅과 스토리가 매우 그럴듯하고 유머러스했으며, 그 세계 안에서 완결성을 가진다. 너무 먼 미래이거나 듣도보도 못한 기술을 펼쳐내는게 아니라, 실제 현재진행형인 화성탐사를 다루고 있기에 '현실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앤디 위어의 두번째 소설인 <아르테미스>는 셋팅은 좋으나 스토리가 별로인 케이스다. 인류가 달에 거주지를 건설한 상황을 설명하는 전반부는 소수 대원의 탐사 상황을 가정한 <마션>보다 훨씬 난이도 높은 셋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달의 환경적 특성과 우주 기지의 기술적 요소들, 그 안에서 영위되는 인간 사회의 구조적 군상들이 나름대로 흥미롭게 제시된다. 


그러나 셋팅 이후 벌어지는 스토리는 굳이 달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액션 활극으로 변해버린다. 무엇인지 딱 떠오르진 않아도,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천재 범죄물'에 지나지 않는다. SF를 기반으로 현실을 비추려는 시도로 봐주기도 어렵다. 애쓴 셋팅을 배반하는 시시한 스토리 수준이라 할 만 하다.


그래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놓기가 힘든 것은 <마션>때나 마찬가지다. 앤디 위어 특유의 낙천적인 사고방식과 경쾌한 템포 하나는 정말 부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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