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거기 없었다
Posted at 2012/01/17 15:34 _
in 2012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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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제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문제를 만나면 우선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를 거의 직감적으로 선택한다. 왜 직감적이라고하느냐면 해결이냐 외면이냐는 거의 문제를 만나는 시점에 곧바로 결정되는 것 같아서다. 사실은 외면하기로 마음 먹어놓고선 해결을 고민하는 척, 남도 나도 속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반대도 많다.
처음부터 외면을 선택해버리면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 반대로 해결을 선택했다면 자연스레 어떻게 해결할지의 고민으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똑부러진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외면하기로 마음 먹기도 하는데, 이건 당연히 선후관계가 바뀔 수 있는 아주 건전한 태도인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고민 과정 앞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질문이 있다. 문제가 맞나?라는 질문이다. 사실은 문제가 아닌데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도 많다. 문제가 아닌데 풀이 방법을 찾으려니 도통 찾아질리가 없다. 예를 들어 [1+1=x] 이건 해답 풀이가 가능한 '문제'다. [1+1=2] 이건 문제가 아니라 해답 풀이가 애초에 없는 '명제'다. [1+1=3]은? 이것도 문제가 아니라 명제다. 다만 참이 아닐뿐이다. 그런데 이런걸 문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많다. 그 상태로 백날 풀이법 찾고 앉아있봐야 절대 나올 게 없다. 당연히 이럴때는 [1+1+x=3]으로 명제를 문제로 바꿔야한다. 그러면 해답 풀이가 가능해진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이 나온다.
처음부터 외면을 선택해버리면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 반대로 해결을 선택했다면 자연스레 어떻게 해결할지의 고민으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똑부러진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외면하기로 마음 먹기도 하는데, 이건 당연히 선후관계가 바뀔 수 있는 아주 건전한 태도인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고민 과정 앞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질문이 있다. 문제가 맞나?라는 질문이다. 사실은 문제가 아닌데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일도 많다. 문제가 아닌데 풀이 방법을 찾으려니 도통 찾아질리가 없다. 예를 들어 [1+1=x] 이건 해답 풀이가 가능한 '문제'다. [1+1=2] 이건 문제가 아니라 해답 풀이가 애초에 없는 '명제'다. [1+1=3]은? 이것도 문제가 아니라 명제다. 다만 참이 아닐뿐이다. 그런데 이런걸 문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많다. 그 상태로 백날 풀이법 찾고 앉아있봐야 절대 나올 게 없다. 당연히 이럴때는 [1+1+x=3]으로 명제를 문제로 바꿔야한다. 그러면 해답 풀이가 가능해진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