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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똥과의 사투

손군 songoon 2018. 10. 1. 18:56

의문의 똥은, 이사온 지 한달이 지났을 무렵 건물 출입문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남의 똥 보는 건 오랜만이네'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매일 밤 한 두덩이씩 점유 반경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행여 밟을까 보폭에 신경 써야할 정도가 되었을때 다소 위기감이 들었지만, 아직 이 집과 동네의 청소 문화가 낯선터라 딱히 어쩌지는 않고 두고 보기로 했다. 1층에는 점잖으신 중년 가족이 살고, 2층에는 갓난 아이가 있는 젊은 가족이 살고 있는데, 설마 탑층(그래봐야 3층)에 홀로사는 노총각에게까지 똥 청소의 기회가 오겠는가. 


2주 정도가 지나자 '밭'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가 되었다. 풋내기 입주자의 예상과 달리 1,2층 사람들의 인내심은 매우 뛰어났다. 대체 그 앞으로 유모차는 어떻게 끌고 다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마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는 없어서 오고가며 곁눈질로 관찰해보니, 그 크기와 반죽 정도로 보았을 때 필시 개똥일 거라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 떠돌이 개는 드물텐데, 어떤 용감한 견주가 남의 아파트 앞을 화장실 취급할 수 있을까. 인적이 드문 것도 아니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것은 개의 유산이 아니라 고양이의 유산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동네엔 유독 길 고양이가 많았다. 집 앞 편의점까지 짧은 길에도 4-5마리는 만날 정도니.


나는 이런 경우의 대처법을 전혀 몰랐다. 그저 (때마침 장마철이라) 밤마다 내리는 비가 좀 더 세차길 바랐다. 하지만, 자연의 힘은 그리 위대하지 못했다. 씻겨내려가긴 커녕, 빗물에 찰짐과 냄새만 더해질 뿐이었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볼까 했지만, 우리집 앞 똥까지 치워달라는 건 좀 이상했다. 심지어 주차장 안쪽의 출입문은 명백한 사유지 아닌가. 건물 관리비를 관리하는 총무님에게 전화했더니, 역시 총무님답게 상황을 알고 계셨다. 자기도 처음 보는 사태란다. 그러나 아무리 총무라지만 개똥까지 치워줄 순 없다고 하셨다. 출입 라인이 별도여서 총무님 댁과는 별 상관이 없으니 그 말씀이 맞다. 미련이 남아 "총무님, 개똥이 아니라 고양이 똥 아닐까요..."라고 의견을 피력해보았다. 역시나 아무리 총무라지만 개똥 뿐 아니라, 고양이 똥도 치워줄 수 없으셨다. 


이제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야했다. 먼저 동네방네 떠도는 개, 고양이 밥 챙기느라 알바비를 탕진하던 사촌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고양이는 그러지 않아"란다. 현재 도도한 고양이 세마리와 함께 거주하는 친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야, 고양이는 그러지 않아"란다. 구글, 네이버, 다음에 검색을 아무리해도, "님아, 고양이는 그러지 않아"란다. 나는 이 땅의 애묘인들을 진심으로 미워하게(무시하게) 되었다. 당신들이 믿어 의심치 않고 섬겨마지 않는 고양이님들은, 아무데나 똥을 쌉니다! 모래로 안 덮습디다! 꽤나 크고 찰진 걸 쌉니다! 맛동산처럼도 안 생겼습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선 철물점에서 나이론 빗자루와 양석 쓰레받이를 사다가 어떻게 어떻게 똥밭을 치운 뒤, 식초 희석한 물을 넓게 뿌려두었다. 고양이는 시큼한 냄새를 싫어한대서다. 39도 더위에 3층에서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 몇 번을 날랐다. 다음날 아침, 똥밭에는 새로운 똥이 자라났다. 일주일을 반복했지만 실패했다. 스타벅스에서 원두 가루를 얻어다 곳곳에 흩뿌려두었다. 커피 향을 싫어한대서다. 다음날 아침, 똥밭에는 새로운 똥이 자라났다. 일주일을 반복했지만 실패했다. 마트에서 나프탈렌을 사다가 곳곳에 배치했다. 자동차용 고양이 퇴치제가 나프탈렌과 향이 같대서다. 행여 고양이가 나프탈렌을 먹고 큰일날까 싶어 구멍낸 플라스틱 커피 용기에 담아 예상 지역을 포위했다. 다음날 아침, 똥밭에는 새로운 똥이 자라났다. 일주일을 두었지만 실패했다. 고양이는 냄새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더이상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CCTV를 달아야하나. 차를 이쪽에 주차해서 블랙박스 촬영을 할까? 그런데 범인 촬영에 성공해도, 뭘 할 수 있지? 매일 아침 베란다로 창밖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석궁으로 길고양이를 쏴서 처벌받았다는 아무개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대체 나는 왜 빚까지 내서 이 집에 이사온 것일까. 소파를 사고 양문형 냉장고를 사고 홈시어터 전용 룸을 마련하면 뭘하나, 집 앞에 똥밭이 있는 걸. 어느날 누군가 똥을 밟아 복도 안쪽까지 발자국이 선명히 찍힌 것을 봤을 때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다만 뭘 포기해야하는지 몰랐을 뿐.


그런데 의문의 똥은, 갑자기 사라졌다. 미친놈처럼 마트에서 가장 큰 식초를 사다가 원액을 마구 뿌려댄 며칠 뒤였나. 1,2층 사람들에게 저 총각 참 유난일세, 소문이 났을 것 같은 무렵이었다. 갑자기 식초가 효과를 본 것인지, 녀석이 더 쾌적한 다른 곳을 마련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처음 왔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집 앞에 당도하면 바닥을 보며 조심조심 걷게 되었다. 살다살다,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게 될 줄이야. 뭐 그래도 좋다. 똥 없는 집 앞을 가졌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도 어느 운 없는 집 앞은 똥밭이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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